오르세미술관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왜 이 그림은 그렇게 큰 논란이 됐을까?

캔버스수집가 2026. 8. 15. 13:45

오르세 미술관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조금 더 걷다 보니 익숙한 그림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워낙 많이 봤던 그림이라 눈에 띄었고, 실제로 앞에 서서 보니 생각보다는 그림이 굉장히 컸습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
풀밭 위의 점심식사

 

그런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숲속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고, 뒤쪽에는 또 한 여자가 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여자는 옷을 입지 않은 채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미술관에서 누드화가 특별히 이상하지 않지만, 이 그림이 처음 등장했던 1863년에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유명했던 그림은 아니었다

마네가 이 그림을 그린 건 1863년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 전시회 중 하나였던 살롱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심사위원들에게 거절당했습니다.

 

그해에는 워낙 많은 작품이 탈락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자료에 따르면 약 5,000점이 심사를 받았고 그중 3,000점이 거절됐다고 합니다.

결국 나폴레옹 3세가 거절된 작품들을 따로 전시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살롱 데 르퓌제, 즉 낙선전이 열리게 됩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도 이곳에서 전시됐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낙선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조롱을 받기도 했고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충격적이었을까?

단순히 여자가 누드로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술에서 누드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느냐였습니다.

당시에는 신화나 역사 속 인물을 빌려 누드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림 속 여성이 실제 사람이 아니라 신이나 신화 속 인물이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마네의 그림에는 그런 핑계가 없었습니다.

그림 속 남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입던 현대적인 옷을 입고 있고, 여자는 아무런 신화적 인물로 꾸며져 있지 않습니다.

마치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의 사람을 그린 것처럼 보입니다.

오르세 미술관도 바로 이 점을 작품의 중요한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고전적인 누드의 전통을 참고했지만, 마네는 신화나 알레고리라는 틀을 빼고 현대적인 인물을 등장시켰습니다.

당시 관람객들에게는 이것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사실 마네가 아무것도 참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건 마네가 기존 미술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갑자기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고전 회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에 따르면 그림의 구성에는 당시 루브르에 있던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와 라파엘로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판화가 참고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네는 옛 거장들의 그림을 알고 있었고, 그 전통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꿔서 그린 셈입니다.

고전적인 구도를 가져왔는데 그 안에 당시 파리에서 볼 법한 사람들을 넣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듭니다.

구성은 어딘가 익숙한데 등장인물은 너무 현실적입니다.


그림 속 여자는 누구였을까?

앞쪽에 앉아 있는 여성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누구인지도 궁금해집니다.

이 여성은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ent)이라는 모델입니다.

빅토린 뫼랑은 마네의 여러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로, 훗날 마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올랭피아〉에서도 모델이 됩니다.

 

특히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그녀가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림 속 인물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저는 실제로 그림 앞에 서서 이 시선이 생각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진으로 볼 때는 그림 전체를 한 번에 보게 되는데,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끌립니다.


그림의 표현 방식도 당시에는 낯설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주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빛과 그림자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인물과 배경이 자연스럽게 섞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마네는 전통적인 회화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부드러운 명암과 자연스러운 원근 표현에서 벗어나 강한 명암 대비와 비교적 평면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역시 당시 비평가들이 마네의 이런 표현을 문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그림의 형태가 마치 여러 색의 얼룩처럼 보인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오히려 이런 부분이 마네 그림의 특징처럼 느껴지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미술 규칙을 무시한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제목도 처음부터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아니었다

이 그림에는 조금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마네가 낙선전에 이 작품을 내놓았을 당시 제목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목욕〉(Le Bain)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됐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 기록에도 1863년 낙선전에 이 제목으로 출품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현재의 제목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 알려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조롱받았지만 지금은 대표작이 됐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웃고 비판했던 그림이 지금은 프랑스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됐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훗날 새로운 미술로 넘어가는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오히려 이 그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됐으니까요.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바로 그 규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후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


직접 보고 나서 더 궁금해진 그림

오르세에서 이 그림을 직접 보기 전에는 저도 그냥 '유명한 마네 그림'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서 작품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찾아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 그림보다 오히려 당시 사람들이 왜 화를 냈는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장면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1863년이라는 시대를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고전적인 누드화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그 안에 신화 속 여신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적인 여성을 등장시키고,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마네는 오래된 미술의 형식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그대로 따라 그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지금까지도 재미있는 그림으로 남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던 그림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는 그림이 된 것입니다.


작품 정보

  • 작품명 :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
  • 화가 : 에두아르 마네
  • 제작 연도 : 1863년
  • 재료 : 캔버스에 유채
  • 크기 : 207 × 265cm
  • 소장처 : 오르세 미술관

참고 자료

  • Musée d'Orsay, Le Déjeuner sur l'herbe - Edouard Manet
  • Musée d'Orsay, Les peintres, le Salon, la critique, 1848-1870

본문에 사용한 작품 사진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