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튀르 타락한 로마인들, 로마의 파티인 줄 알았는데 프랑스를 비판한 그림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그림이 정말 크다.”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역사화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앞에 서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압도적이었습니다.
작품의 크기는 무려 가로 7.72m, 세로 4.72m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그림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고대 로마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즐기는 장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쿠튀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로마의 타락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살고 있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였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림의 중앙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도 있고, 춤을 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지친 듯 몸을 늘어뜨리고 있고, 여전히 술잔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화려한 연회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분위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즐겁게 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도 있고, 연회가 끝나가는 듯한 허무함도 느껴집니다.
쿠튀르는 이 장면을 고대 로마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역사화로 만들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중앙의 인물들을 술에 취하고 지친 채 계속 마시고 춤추는 사람들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타락한 로마인들'일까?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프랑스어로 〈Romains de la décadence〉, 우리말로 하면 '타락한 로마인들' 정도로 옮길 수 있습니다.
쿠튀르는 이 그림을 단순한 연회 장면으로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작품에 붙인 설명에는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글이 등장합니다.
유베날리스는 로마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전쟁보다 더 잔혹한 악덕이 로마에 내려앉았다'는 의미의 문장을 남겼습니다.
쿠튀르는 바로 이 고대 로마의 이야기를 자신의 그림에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집니다.
쿠튀르는 왜 19세기 프랑스에서 갑자기 고대 로마의 타락을 그렸을까요?
로마 이야기를 빌려 프랑스를 바라보다
이 그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쿠튀르가 비판하려 했던 것은 고대 로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로마의 모습에 겹쳐 놓았습니다.
쿠튀르는 공화주의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고, 당시의 정치와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그가 7월 왕정 아래 프랑스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기 위해 고대 로마의 모습을 빌렸다고 설명합니다.
당시 지배층은 여러 정치적 스캔들로 신뢰를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겉으로는 로마를 그리고 있지만, 당시 관람객들에게는 충분히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1847년 살롱의 비평가들은 이 그림 속 로마인들을 두고 “타락한 프랑스인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옛날 로마 사람들은 참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쿠튀르가 의도한 메시지를 절반만 본 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연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가 연회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앞쪽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인물들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기둥 위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지 않습니다.
그저 축 처진 표정으로 연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또 다른 두 남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연회에 끼어들지 않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이 두 사람을 외국에서 온 방문객으로 설명합니다.
두 사람은 앞에서 벌어지는 연회를 마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운데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술과 춤에 빠져 있다면, 화면 앞의 세 사람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람객과 비슷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조각상도 이 연회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림 위쪽을 보면 또 하나 재미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연회가 벌어지는 공간을 둘러싼 고대 조각상들이 보입니다.
이 조각상들은 단순한 배경 장식처럼 보이지만, 오르세 미술관은 이 조각상들 역시 연회를 내려다보며 비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화면의 구조가 조금 재미있어집니다.
가운데에서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춥니다.
앞쪽에서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쪽에서는 고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상징하는 조각상들이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마치 그림 전체가 이 연회를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쿠튀르는 왜 이렇게 거대한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은 쿠튀르가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인물과 건축물, 조각상, 각종 소품이 들어가 있습니다.
당시 역사화는 회화 장르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나 인간의 행동을 통해 관람객에게 도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장르였습니다.
쿠튀르는 바로 이 역사화의 형식을 이용했습니다.
아주 거대한 화면을 만들어 사람들을 압도하고, 그 안에 수많은 인물을 배치한 뒤 고대 로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던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크기도 단순히 '큰 그림'이라는 특징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크게 보여줘야 할 만큼 중요한 경고를 하고 싶었던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1847년 살롱에서 이 그림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타락한 로마인들〉은 1847년 파리 살롱에서 공개됐습니다.
그보다 앞선 1846년에 프랑스 정부가 작품을 주문했고, 쿠튀르는 3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살롱에서 공개된 뒤 국가가 구입했습니다.
당시 쿠튀르가 이 그림으로 하려던 일은 단순히 옛날 로마를 멋지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전적인 역사화의 형식을 이용하면서 그 안에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으로도 평가받았습니다.
화려한 장면인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허무하다
이 그림은 처음 보면 화려합니다.
사람도 많고, 옷도 화려하고, 건축물도 거대합니다.
그런데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공허한 느낌이 남습니다.
술과 춤이 가득한데 즐거워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연회에 참여하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는 오래된 조각상들이 그 모든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쿠튀르가 의도했던 효과였을지도 모릅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화려하고 풍요로운데, 그 안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고대 로마의 이야기를 빌렸지만 결국 관람객이 자신의 시대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알고 나서 다시 보니 그림 속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등장해서 어디부터 봐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의미를 알고 다시 보면 가운데의 연회보다 화면 앞의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술과 춤에 빠진 사람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한 화면 안에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오래된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결국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연회 자체가 아니라 그 연회를 바라보는 시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쿠튀르는 고대 로마의 타락을 그렸지만, 1847년의 프랑스 관람객들은 그 장면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사회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거대한 그림은 단순한 로마의 연회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림 속 로마인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시선이 우리 자신이 사는 시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품 정보
- 작품명 : 〈타락한 로마인들〉 (Romains de la décadence)
- 화가 : 토마스 쿠튀르
- 제작 연도 : 1847년
- 재료 : 캔버스에 유채
- 크기 : 472 × 772cm
- 소장처 : 오르세 미술관
참고 자료
- Musée d'Orsay, Romains de la décadence - Thomas Couture
- Musée d'Orsay, Thomas Couture 작가 자료
본문에 사용한 작품 사진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