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브르에서 그림을 보다 보면 유난히 앞에서 한참 서 있게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림이 너무 유명해서라기보다, 도대체 어디부터 봐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화면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붉은 침대 위에는 한 남자가 누워 있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누군가는 칼을 들고 있고, 누군가는 도망치려는 듯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말과 보물, 화려한 장식품까지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화면 전체가 무언가 큰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이 그림은 한 왕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르다나팔루스는 왜 죽음을 앞두고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그림의 주인공은 고대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입니다.
그는 반란군에게 궁전을 포위당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르다나팔루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적에게 넘겨주지 않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방법은 상당히 잔혹했습니다.
자신의 여자들과 시종들, 그리고 아끼던 말과 개까지 모두 죽이고 자신이 가진 물건들도 함께 불태우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루브르에 남아 있는 당시 살롱 설명에서도 사르다나팔루스가 자신의 여자와 시종뿐 아니라 말과 개까지 죽이라고 명령하고, 자신이 누렸던 어떤 것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려 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전쟁터의 전투가 아닙니다.
적군이 궁전을 공격하는 순간도 아닙니다.
사르다나팔루스가 자신의 궁전 안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왕은 왜 저렇게 태연하게 누워 있을까?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의외로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다.
화면 가장 위쪽에 있는 붉은 침대 위에 사르다나팔루스가 누워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는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습니다.
이 차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화면 아래쪽은 사람과 동물, 물건이 뒤엉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르다나팔루스는 그 모든 혼란에서 한 발 떨어져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벌인 일을 직접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 때문에 그림을 처음 보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쪽의 혼란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붉은 침대 위의 왕에게 올라오게 됩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여인은 누구일까?
화면 중앙을 자세히 보면 사르다나팔루스 옆에 누워 있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고, 몸을 뒤로 젖힌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물은 단순히 화면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들어간 인물이 아닙니다.
루브르의 자료에서는 이 여성을 사르다나팔루스가 욕망했던 인물로 설명하면서,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저항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한 복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인물의 몸을 자세히 보면 익숙한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몸을 뒤로 젖힌 자세와 풍성한 머리카락, 등을 드러낸 모습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에서 보이는 인물의 자세와 연결됩니다.

들라크루아는 제리코와 가까운 관계였고,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여성의 자세 역시 당시 프랑스 회화에서 이어지고 있던 표현을 들라크루아가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오히려 주변에 있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라는 제목 때문에 왕에게만 시선이 가기 쉽지만,
실제로는 주변 인물들이 이 장면을 훨씬 더 잔혹하게 만들어줍니다.
화면 곳곳에서 사람들이 왕의 명령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여성을 끌고 가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칼을 든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래쪽에는 쓰러진 인물과 물건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말 한 마리도 보입니다.
왕이 자신의 재산뿐 아니라 자신이 아끼던 동물들까지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를 그림 안에 그대로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화면을 자세히 볼수록 처음에는 화려하게만 보였던 장면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 붉은 침대와 금빛 물건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화려한 색을 사용했을까?
이 그림에서 가장 강렬한 색은 역시 붉은색입니다.
사르다나팔루스가 누워 있는 침대와 주변의 천이 화면 가운데에서 강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 주변에는 금색과 붉은색, 짙은 갈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색채는 단순히 궁전의 화려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들라크루아는 색을 이용해 화면의 긴장감과 감각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들라크루아가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차갑고 강한 대비에서 벗어나,
더욱 따뜻하고 풍부한 색채를 사용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이 그림은 처음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은 1827년 살롱 출품을 위해 제작됐고, 1828년 파리 살롱에서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반응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의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화면의 복잡한 구성과 강렬한 색채, 관능적인 인물 표현은 당시 미술계에서 상당히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고전주의 회화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안정적인 구도와 명확한 형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을 살롱에 출품했지만 당시 판매하지 못했고, 이후 무려 18년 동안 자신의 작업실에 보관했습니다.
1846년이 되어서야 개인 수집가 다니엘 데이비드 윌슨에게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소장자를 거친 뒤 1921년 루브르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림의 크기를 알고 보면 더 놀랍다
사진으로 보면 화면이 크다는 사실이 잘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작품의 크기는 무려 가로 4.96m, 세로 3.92m입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화면입니다.
그래서 실제 작품 앞에 서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크기와 움직임이 훨씬 강하게 다가옵니다.
작은 화면 안에 여러 인물을 정교하게 배치한 그림과 달리,
이 작품은 관람객을 거대한 장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제가 실제로 루브르에서 봤을 때도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화면의 크기와 색감이 훨씬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진짜 재미는 '혼란'에 있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처음 보면 어디부터 봐야 할지 헷갈립니다.
사르다나팔루스가 어디 있는지 찾고 나면 주변 인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에는 말과 장신구, 침대와 천이 보입니다.
시선이 한곳에 오래 머물기보다는 화면 곳곳으로 계속 이동합니다.
바로 이것이 들라크루아가 만든 장면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 그림에는 평온한 중심이 없습니다.
왕은 가만히 있지만 주변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 물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화면 전체에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단순히 한 장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바로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 서면 처음에는 화려한 색에 시선이 끌리고, 조금 더 오래 보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이야기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제야 제목에 적힌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림 전체를 다르게 보이게 합니다.
작품 정보
- 작품명: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La Mort de Sardanapale)
- 작가: 외젠 들라크루아
- 제작연도: 1827년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392 × 496cm
- 소장처: 루브르 박물관, 파리
- 현재 전시: 드농관 1층 700번 전시실
참고 자료
- Musée du Louvre, 〈Mort de Sardanapale〉 소장품 정보
- Musée du Louvre, 〈Sardanapale révélé : un chef-d’œuvre à la vivacité retrouvée〉
- Musée du Louvre, 〈Une beauté idéale〉 작품 해설 자료
본문에 사용한 작품 사진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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