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브르에서 그림을 보다 보면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서 보게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앵그르의 〈카롤린 리비에르 양의 초상〉이 그랬어요.
처음 봤을 때는 흰색 드레스를 입은 어린 여성이 조용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평범한 초상화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다시 보니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바로 목입니다.
얼굴에 비해 목이 꽤 길어 보이고, 어깨와 몸의 연결도 실제 사람의 비례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림 전체로 보면 이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독특한 비례 때문에 그림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작품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1805년에 그려진 카롤린 리비에르
이 작품의 화가는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입니다.
작품명은 〈카롤린 리비에르 양의 초상〉이고 1805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그림 속 인물은 제목 그대로 카롤린 리비에르입니다.
그녀는 필리베르 리비에르의 딸이었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앵그르가 카롤린 한 사람만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그녀의 아버지 필리베르 리비에르와 어머니 리비에르 부인의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즉, 루브르에는 앵그르가 그린 리비에르 가족의 초상화들이 함께 남아 있는 셈입니다.
가족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카롤린의 초상화가 조금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흰색 드레스
카롤린은 화면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몸은 살짝 비스듬하게 돌리고 있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어요.
그리고 흰색의 높은 허리선이 특징적인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작품 설명에서도 흰색 엠파이어 드레스와 등과 팔을 감싸고 있는 모피, 갈색 장갑을 작품의 주요 특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실제로 보면 이 흰색이 상당히 강하게 들어옵니다.
배경은 녹색과 푸른색 계열의 풍경이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에 가깝기 때문에
가운데 있는 흰색 드레스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드레스보다 먼저 얼굴이 보이고, 얼굴을 따라 시선을 내려가면 기다란 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부터 그림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왜 이렇게 목이 길어 보일까?
이 그림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카롤린의 목은 실제 사람의 목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얼굴과 어깨 사이의 공간을 보면 목이 상당히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앵그르는 인체를 사실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을 목표로 했던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과 형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인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비례에서 벗어난 형태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앵그르의 다른 여성 초상에서도 좁은 어깨와 길고 유연한 목을 연결하는 선이 나타나는데, 미술사 연구에서도 이런 특징을 앵그르의 여성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표현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카롤린 리비에르 양의 초상〉의 목 역시 단순히 "잘못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앵그르가 원하는 아름다운 선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정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더 흥미롭습니다.
얼굴은 또 굉장히 차분하다
목의 형태가 독특한 것과 달리 얼굴은 상당히 차분합니다.
카롤린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강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습니다.
입술은 살짝 올라가 있고 눈은 관람자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활짝 웃는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표정한 것도 아닙니다.
이 애매한 표정 때문에 오히려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 앵그르는 얼굴의 윤곽을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검은 머리카락과 밝은 피부가 강하게 대비되고, 눈썹과 코, 입술은 아주 선명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강한 색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손도 재미있다
카롤린의 손에는 갈색 장갑이 들려 있습니다.
이 장갑은 흰색 드레스와 확실한 색 대비를 만들어냅니다.
흰색과 검은색에 가까운 머리카락 사이에 갈색이 들어가면서 화면의 색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몸 앞쪽에 모여 있는 팔과 장갑은 인물의 자세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림에 곡선을 만들어줍니다.
뒤쪽을 감싸고 있는 흰색 모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피가 어깨와 팔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어서 인물의 몸을 하나의 커다란 곡선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결국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목의 긴 선 → 어깨 → 모피의 곡선 → 팔과 장갑이 서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던 비례가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배경의 풍경도 그냥 배경은 아니다
인물 뒤쪽에는 강과 나무, 하늘이 보입니다.
배경 자체가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물보다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 덕분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카롤린에게 집중됩니다.
특히 흰색 드레스와 모피가 어두운 녹색의 풍경 앞에서 더욱 밝게 보입니다.
인물의 피부와 옷은 밝고 깨끗한데 배경은 상대적으로 어둡기 때문에, 그림 전체가 조용하면서도 묘하게 인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사실 이 작품은 리비에르 가족 초상화 중 하나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앵그르는 카롤린만 그린 것이 아닙니다.
1805년에는 카롤린의 아버지 필리베르 리비에르와 어머니 리비에르 부인의 초상화도 제작했습니다.
필리베르 리비에르의 초상은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은 남성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고, 루브르 기록에는 1804~1805년경 제작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인 리비에르 부인은 흰색 엠파이어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기대어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렇게 세 작품을 함께 생각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아버지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공식적인 모습이고, 어머니는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 카롤린은 흰색 드레스와 모피를 두른 채 정면을 바라봅니다.
가족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각각의 인물에서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카롤린의 초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 작품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카롤린의 초상화입니다.
아마도 이유는 조금 이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완벽하게 현실적인 초상화였다면 그냥 "예쁘게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길게 표현된 목과 살짝 어색해 보이는 신체 비례 때문에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보면 그게 단순한 어색함이 아니라 그림 전체의 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앵그르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맞게 인물을 다시 구성한 셈입니다.
루브르에서 직접 보니 더 재미있었던 그림
저는 이 그림을 루브르에서 직접 보고 사진으로 남겼는데요.
사진으로 다시 보니까 오히려 처음 현장에서 봤을 때보다 목의 길이가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림 앞에서는 주변 작품이나 관람객 때문에 전체적인 인상만 보고 지나가기 쉬운데, 사진으로 다시 보면 얼굴부터 목, 모피, 장갑까지 하나씩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그림은 유명한 작품의 이름을 알고 보는 것보다 어디가 이상한지 먼저 찾아보는 방식으로 보는 게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루브르에서 이 그림을 만나게 된다면 얼굴만 보고 지나치지 말고,
얼굴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선을 한번 따라가 보세요.
처음에는 "목이 왜 이렇게 길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을 따라 어깨와 모피, 팔까지 이어서 보면 왜 앵그르가 이런 방식으로 그렸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쁜 초상화인 동시에,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것과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을 만드는 것은 꼭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루브르에서 본 수많은 초상화 중에서도 이 작품이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작품 정보
작품명: 〈카롤린 리비에르 양의 초상〉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제작연도: 1805년
재료: 캔버스에 유화
크기: 100 × 70cm
소장: 루브르 박물관 회화부
소장품 번호: MI 1447
현재 전시: 루브르 데농관 1층 702번 전시실
참고 자료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정보 — 〈카롤린 리비에르 양의 초상〉
루브르 박물관 — 〈리비에르 부인〉
루브르 박물관 — 〈필리베르 리비에르
본문에 사용한 작품 사진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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