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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

반 고흐 아를의 방, 왜 같은 방을 세 번이나 그렸을까?

by 캔버스수집가 2026. 8. 18.

반 고흐 〈아를의 방〉, 왜 같은 방을 세 번이나 그렸을까?

반 고흐의 자화상 이야기를 이어서 이번에는 그의 방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아를의 방〉을 처음 봤을 때는 조금 의외였습니다.

 

생각보다 방이 작고, 가구도 많지 않습니다.

침대 하나와 의자 몇 개, 작은 테이블과 세면대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림은 굉장히 강렬합니다.

노란색 침대와 의자, 붉은 바닥, 푸른색 문과 벽이 한 화면 안에 섞여 있어서

실제 방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색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반 고흐는 이 방을 한 번만 그린 것이 아닙니다.

거의 똑같은 구도로 무려 세 번 그렸습니다.


같은 방을 왜 세 번 그렸을까?

반 고흐가 처음 〈아를의 방〉을 그린 것은 1888년 10월입니다.

당시 그는 프랑스 남부 아를의 '노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반 고흐가 단순히 잠을 자는 집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에 다른 화가들을 불러 함께 생활하며 작업하는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특히 폴 고갱이 함께 지내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자신의 방 옆에 고갱을 위한 방도 마련해두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방을 그림으로 남긴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그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반 고흐가 병원에 있는 동안 론강이 범람하면서 물이 들어왔고, 그림을 비롯한 작품들이 손상되었습니다.

 

반 고흐는 1889년 이 첫 번째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했고, 같은 크기의 두 번째 버전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에게 보내기 위해 조금 작은 세 번째 버전도 만들었습니다.

오르세에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세 번째 버전입니다.


그런데 세 그림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세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처음에는 거의 똑같아 보입니다.

침대도 있고, 의자도 있고, 창문도 있고, 벽에 그림도 걸려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벽에 걸린 그림들이 서로 다르고, 색의 강도나 일부 가구의 표현에서도 차이가 나타납니다.

반 고흐는 처음 그림을 그대로 기계적으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기억과 기존 작품을 바탕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오르세 소장본은 특히 다른 두 작품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방을 세 번 그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반 고흐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 장면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붙잡아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은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다

그림 속 가구들을 보면 상당히 소박합니다.

침대 하나가 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의자와 작은 테이블, 세면대가 있습니다.

벽에는 몇 점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값비싼 가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반 고흐가 이 방을 그릴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구의 모습이 아닌

바로 색이었습니다.

 

실제로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방의 색을 하나씩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벽은 옅은 보라색, 바닥은 낡은 붉은색, 침대와 의자는 노란색, 이불과 베개는 연한 녹색, 세면대는 주황색, 창문은 녹색이라고 상세히 설명한 것입니다.

 

이렇게 색을 하나씩 지정한 것을 보면 그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색을 의도적으로 구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 고흐가 이 방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휴식'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강한 색을 사용했을까요?

의외로 반 고흐가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화려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을 보면서 편안함과 휴식을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색채를 단순화해 방에서 '절대적인 휴식'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알고 보면 조금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강렬한 색 때문에 이 방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느껴지는데, 정작 화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정반대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반 고흐에게 이 방은 눈에 띄는 공간이 아니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신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이 어딘가 이상하게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닥과 가구의 선이 실제 공간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침대와 의자가 약간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고, 바닥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처음 보면 반 고흐가 원근법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원근법이 틀린 그림'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조금 아쉽습니다.

 

반 고흐는 사진처럼 정확한 공간을 재현하는 것보다 색과 형태를 단순화해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평면적인 색면과 단순한 형태를 회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아를의 방〉은 실제 방을 정확하게 복사한 그림이라기보다

반 고흐가 생각한 '편안한 방'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그림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벽에 걸린 그림들도 그냥 장식이 아니다

그림을 보면 침대 위쪽 벽에 작은 그림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 부분은 실제로 세 작품을 비교할 때도 중요한 차이입니다.

 

첫 번째 버전에는 반 고흐가 그린 친구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시인 외젠 보흐와 폴 외젠 밀리에의 초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반 고흐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자신의 방 안에 함께 배치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방의 의미가 조금 달라집니다.

그곳은 단순히 혼자 잠을 자는 침실이 아니라 반 고흐가 친구들과 예술을 함께하고 싶었던 공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특히 고갱을 기다리며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던 시기였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이 작은 방이 반 고흐에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버전은 가족에게 보내졌다

세 번째 〈아를의 방〉은 다른 두 작품과 제작 목적도 달랐습니다.

반 고흐는 1889년 어머니와 여동생 빌레미나를 위해 자신의 대표작 몇 점을 작은 크기로 다시 그렸습니다.

〈아를의 방〉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오르세에 있는 작품은 고흐가 처음부터 전시를 위해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가족에게 보내기 위해 만든 편지같은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세 작품은 조금씩 다른 기대를 품고 있다

처음 그린 〈아를의 방〉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하는 반 고흐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이미 그 방을 떠난 상태에서 기억을 되살려 다시 그렸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림은 가족에게 보내기 위한 작은 그림이 되었습니다.

 

결국 세 작품은 같은 방을 그리고 있지만 완전히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공간을 기록했고, 두 번째에는 사라져버린 공간을 다시 그렸으며, 마지막에는 그 공간을 가족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오르세에서 이 작은 방을 보고 있으면 단순히 '반 고흐가 살던 침실'을 보고 있다는 생각보다,

그가 한때 원했던 삶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화려한 가구도, 특별한 사건도 없는 작은 방입니다.

그런데 반 고흐는 그 안에 자신이 원했던 평온함과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색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1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작은 방 안에는 반 고흐가 꿈꾸었던 조용한 하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작품 정보

  • 작품명: 〈아를의 방〉 (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 작가: 빈센트 반 고흐
  • 제작연도: 1889년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57.3 × 73.5cm
  • 소장처: 오르세 미술관, 파리

참고 자료

  • Musée d'Orsay, 〈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 Art Institute of Chicago, Van Gogh's Bedrooms
  • Van Gogh Museum, Vincent van Gogh 관련 자료

본문에 사용한 작품 사진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했습니다.